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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권장도서-
작성자행복을여는문
등록일13.11.12
조회수3645
문은희 박사의 한국형 자녀교육 40년 연구 기록
“자녀를 품고 사는 ‘포함’ 행동 단위에서 벗어나라”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엄마!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 대부분은 바로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 되라고 잔소리하고, 간섭하고, 부담 주고, 조바심 내다 상처를 주고 만 것이다. 특히, ‘포함’ 행동 단위로 사는 한국 엄마들은 머리와 마음에 자식을 품고는, 아이가 딴짓하는 것을 참아주지 못하고, 다른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더욱 상처를 준다.
심리학자이자 한국 알트루사 상담소 소장인 문은희 박사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서양 어머니들의 우울증을 비교·연구하는 과정에서 ‘포함 단위’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를 찾아내 ‘포함’ 이론을 정립했다. 이 포함 이론은 이 책에서 말하는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원인을 성찰하는 실마리가 된다. 일례로 자녀의 행복과 불행이 자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고 사는 어머니의 것으로 간주되는 걸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 문화의 맥락을 밝혀주는 심리학 이론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다 얼마나 지쳐가고 있는지, 그 속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엄마는 모른다. 아이는 엄마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느낌을 공유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의 아픔과 슬픔을 지금 내 아이가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녀가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알아주고 거기에 맞게 대응하는 길을 제시한다. 자식이 마음에 힘든 짐을 지고 있다면. 그 짐을 덜어주는 게 엄마 아니겠는가?
사랑인 줄 알고 저지른 엄마들의 잘못
- 자녀의 큰 꿈에만 박수쳐주었는가?
- 엄마의 꿈을 자녀의 꿈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는가?
-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하다고 칭찬했는가?
- 아이답지 않고 어른스러워야 좋아했는가?
- 규칙과 약속을 꼭 지키게 했는가?
- 엄마 취향과 같은 것을 고를 때만 허용했는가?
- 슬픔이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 해결해주기 위해서만 노력했는가?
- “너는 내 전부다”라고 부담을 주지 않았는가?
- 실패할까 두려워 미리 지적하고 잔소리하지 않았는가?
- 아이와 마음을 나눈다고 엄마의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냈는가?
- 자만하지 말라고 남들 앞에서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안심했는가?
- 아이 자신보다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 전문가나 책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가?
-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가?
- 체벌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가?
위 문항에 하나라도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는 엄마라면 이 책을 읽기 권한다. 엄마들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되라고 한 일에 지금 아이들은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
엄마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자
요즘 젊은 엄마들은 예전의 어머니들과 달리 자녀와 많은 대화를 하고, 자녀교육서를 읽거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야단만 치던 내 엄마와 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의 저자 문은희 박사는 그 엄마들에게 정말 자녀의 마음을 알아듣고 알아보고 있는지, 아니 들으려 하고 보려 하는지 묻고 있다.
엄마가 사랑한다고 한 행동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인공 조미료 쓰지 않고 정성스럽게 해먹이고, 곱게 입히고 깨끗이 가꾸어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족함 없이 모두 해주었는데, 그게 왜 사랑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에게 체벌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으니, 마음에 상처 준 일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이 엄마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엄마가 모두 알아서 해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체벌하거나 다그치지 않아도 엄마의 실망하는 표정만으로 아이는 큰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가?
지금 엄마들에게 부족한 면이라면, 아이를 위해 넘치게 해주고 희생했지만, 정작 아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와 ‘느낌’을 공유하고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헛수고한 것이다. 사랑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지, 손발로 돌본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엄마들은 지금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자녀에게 박수쳐주지 않고, 엄마의 기준에 통과할 꿈을 갖길 강요한다. 그러고는 그것이 자녀의 꿈인 양 내세우며, “너 어렸을 때부터 의사 선생님 되고 싶다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자녀의 슬픔과 고통을 공감해주기보다, 엄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듯 얼른 눌러버리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 뒤 “엄마가 해결해줬으니 됐지?”라고 결론짓는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여기며 “내가 너보다 널 더 잘 알아”라며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또 따라오지 않으면 “넌 내 전부야”라고 부담을 주거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배신이라도 당한 듯 괴로워한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들의 필독서!
그렇다면 엄마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문은희 박사는 그것이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 문화 습속 안에서 생긴 ‘포함’이라는 심리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국가, 사회, 학교, 심지어 아빠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 엄마에게 떠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은 자식의 미래를 혼자 걱정하며 고군분투하다가, 아이를 나와 다른 독립된 존재로 보지 못하고 머리와 가슴에 ‘포함’하고 살 수밖에 없다. 자식이 잘되면 엄마의 인생도 빛나는 것이고, 반대로 잘못되면 엄마의 인생도 와르르 무너진 듯 낙심한다. 자녀의 행복과 불행, 성공을 엄마 자신의 것과 구분하지 못하니, 아이와 적절히 거리를 두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아이가 무조건 내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당연히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마음이 급해져, 엄마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이 앞에서 ‘천사와 괴물’의 얼굴을 오가게 되는 것이다.
문은희 박사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는 엄마들, 그리고 사랑인 줄 알고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이를 아프게 엄마들에게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를 통해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많은 자녀교육서들이 아이의 문제를 간단하게 ‘엄마의 탓’으로 진단하고, “아이에게 무섭게 대하지 마세요”,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세요”라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문은희 박사는 정작 엄마가 왜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밝히지 않으면,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녀에게 어떻게 하세요’라는 지침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않는다.
문은희 박사가 알트루사 심리 상담소를 거쳐 간 수많은 엄마들과 함께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엄마가 되는 과정, 즉 엄마들이 자녀를 포함하고 살 수밖에 없는 심리 구조를 알아보고, 그렇게 만든 사회 문화 습속에 대해서도 파헤치고, 엄마 역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포함’된 환경에서 자라오며 상처받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치유한 후, 자녀와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을 모두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마디로 ‘문은희 박사의 한국형 자녀교육의 40년 연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문 박사는 엄마들에게 자녀교육을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 자료를 보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자녀의 마음을 보기 위해 노력하자고 권한다. 아이의 눈이 슬픔을 이야기하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아이의 눈이 비어 있으면 눈물을 가득 담고 꼭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분노에 차 있으면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기쁨에 넘치면 있으면 같이 기뻐하자. 엄마의 사랑의 힘을 가진 아이는 그 어떤 힘을 가진 이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추가
어떤 엄마는 “우리 아이는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었요”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소극적으로 태어난 아이와 적극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따로 있을까? 엄마의 눈길 아래에서 자녀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것을 엄마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들이 많이 하는 말 가운데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기본이라는 말이 무섭다. 공부나 생활 태도 등 각 엄마마다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기 마련인데, 이 기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아이는 가차 없이 정죄 받고, 기본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리고 당장 생사화복에 지장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매질이나 언어폭력보다 덜 두려울 것 같은가? 아니다. 경직된 엄마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엄마가 보이는 작은 반응도 아이에게는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 애를 쓰고, 눈치를 보고 소극적이 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아이도 처음부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도록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작은 몸으로 어른의 보살핌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로 태어날 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어떠했다’는 말은 맞지 않다. 부모가 ‘어떻게 키웠다’가 맞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기준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엄마들은 자녀가 그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몰래 기준을 어기는 행동을 한 경우, 큰 배신이라도 당한 듯 행동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